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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 거부자. 비난해도 되는가? 논리와 비판

[드물지만 그냥 주사맞는게 싫어서 거부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 "백신의 위험성을 이유로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만 들으면 의학과 과학에 무지한 집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백신의 위험성은 0%가 아니다. 의학계에서도 질병감염 위험보다 백신접종의 이득이 더 높은 경우에만 백신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은 이 위험과 이득의 저울질인데. 통계적으로는 이득이 상회하기 때문에 백신으로 출시될 수 있었고, 또 일반적으로는 접종을 권고하는것 뿐이다.


◆ 통계의 맹점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통계와 나의 감염 확률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제법 많은 사람들은 낮은 발병확률에도 불구하고 백신의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게다가 이 발병확률은 개인의 노력(백신을 제외한)으로 낮출 수도 있다. 우리가 뉴스에 귀기울이며 위험지역을 회피하고, 외출을 줄이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 후에 손을 씻는것도 바로 그 노력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백신의 이득(발병확률)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백신접종의 이득을 위험보다 낮게 만들수 있다고 믿는다면 백신접종을 거부할 수도 있는거다. 그리고 정말 발병확률을 충분히 낮춘 개인이 있다면 백신접종은 하지 않는게 옳을지도 모른다.


참조: 2017/05/31, "확률과 통계", 본 블로그
http://lisyoen.egloos.com/11263004


◆ 그럼에도 백신을 권하는 이유 "집단면역"

집단면역, 혹은 군집면역이라는 상태가 있다. 집단 내 다수의 사람들이 면역상태(감염이력, 백신접종 등으로 인한)가 되면 집단에 속한 개인에게 전염병이 발병하더라도 집단으로 퍼져나가지 않아서 사실상 전염성을 잃게 되고, 그 결과 면역이 아닌 개인들도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신을 권고하는 의도는 우리 사회를 집단면역상태로 만들려는 목적도 있다. 연령, 임신, 건강상태 등으로 인해 백신접종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면역상태의 집단에 속해 있는게 매우 안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신접종은 개인의 이득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득까지 고려한 결정이다.

당연히 그 사회에는 나도 포함된다.


참조: "집단면역의 효과, 집단면역이란?", 질병관리본부

http://www.cdc.go.kr/CDC/cms/content/mobile/05/77005_view.html


◆ 결론

그래서 그들을 비난해도 되느냐고?

먼저 그들의 주장과 의학계의 주장을 충분히 살펴보자.

이 글에서 언급한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백신거부에는 개인별로 다양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같은 주장을 한다며 전체집단을 매도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백신의 위험성을 과장하거나, 전염병의 감염/확산 위험을 무시하거나, 비과학적인 대안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건 비난해도 된다.

이게 내 의견이다.


성경을 과학으로 해석한다? #2 내 멋대로 해석하는 종교

[노아의 방주]

나는 창조과학이라는, 이 신학도 과학도 아닌걸 싫어하는 편인데. 그 역사가 좀 길다.
(2004년 포스트 참조: 성경을 과학으로 해석한다?)

창조과학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과 근거 없는 설화를 버무려서 과학적으로 성경의 모순을 설명하려는 시도다.
옛날 약장수와 비슷한 방식인데 아직도 약장수의 후예들이 버젓히 사기치고 다니는걸 보면 이 BM은 인간에게 잘 먹히는 것 같다.

유튜브를 보다가 노아의 홍수와 창세기 인물의 수명(900살을 가뿐히 넘는)에 대한 업그레이드 된 해석을 볼 수 있었다.

(아래 가설 이름은 편의상 붙인것임)

1. 물층설
하나님이 천지창조때 하늘에 물층을 만드셨고 이로인해 자외선과 같은 유해광선이 차단되었다. 이 물이 노아의 홍수때 쏟아져 내려와 이제 유해광선을 받게 된 지구상의 생명체는 수명이 줄었다. 아직도 하늘의 물층의 흔적이 북극 상공에 얼음으로 남아 떠있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나사에서 분석위성을 띄웠다.

=> 과학의 입장
태양에서 오는 유해광선(구체적으로 자외선)이 노화에 영향을 주는것은 입증된 사실.

=> 나사의 입장
나사가 북극 상공을 지나는 위성으로 얼음을 관측하고 있는 것은 사실.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얼음이 아니라 북극해의 얼음 두께와 상태를 측정하고 있음.
당연히 그 이유는 지구온난화를 확인하기 위함임.

2. 지자기설
과거에는 지구 자기장이 훨씬 강했기 때문에 태양풍의 유해 방사선을 지금보다 많이 차단했고, 그 결과 인간의 수명도 길었다.

=> 과학의 입장
지구 자기장이 오랜세월동안 변화해온 것은 사실.
지구에는 자기장이 유해 방사선을 포함한 태양풍을 막아주고 있어서 생명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지구 자기장이 꾸준히 감소해왔다는 것은 근거 없음.
과학계에서 가장 널리 지지받는 지구 자기장 이론인 다이나모이론에 따르면 오히려 지구탄생 초기에는 지자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됨.

3. 고농도산소설
과거 지구에는 지금보다 산소가 많아서 산소의 치유력으로 인간이 오래살 수 있었다. 공룡이 거대할 수 있었던 것도 산소가 많았기 때문이고, 과학적으로 공룡시대에 산소농도가 높았던건 입증되었다. 산소의 치유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 과학의 입장
주라기와 백악기에 산소 농도가 높았던건 입증된 사실.
공룡이 그 영향으로 큰 몸집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학설이 있음.
이후에 줄어든 산소농도가 공룡과 같은 거대동식물의 멸종에 영향을 줬다는 것도 같은 학설에서 설명.
하지만 산소농도가 높았던건 인간출현 이전.
(현재 창조과학은 공룡을 부정하는걸 포기하고 공룡이 인간과 같은 시기에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음)

고압산소치료는 실제로 일산화탄소중독에 사용하는 치료법.
다양한 치료분야에서 고압산소치료의 효과를 연구하고 있음.

4. 석탄매장량과다설
하늘에 물층이 있던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바다가 지구표면의 20% 뿐이었고, 넓은 육지와 높은 산소농도 덕분에 수 많은 식물이 자랄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처럼 많은 석탄이 매장되있을 수 있었다. 현대 과학은 지구의 석탄량이 이렇게 비이상적으로 많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 과학의 입장
지구의 석탄량이 많은 이유는 최초의 식물이 출현한 시기가 약 30억년 이전이기 때문.
육상식물이 출현한 것도 약 4억년 이전이기 때문.
석탄은 약 4억년 ~ 6천만년전의 지층에서 채굴됨.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지구의 역사는 약 6천년. 방사성동위원소 측정법과 지층의 연대측정법은 부정)


마치며
창조과학을 연구하는 창조과학회는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정교회)의 공식적인 지지를 받는 단체가 아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과 신앙의 충돌에 갈등하는 종교인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마음의 안식처가 될 지도 모른다.

기독교가 불교를 부정하기 위해 불교의 법전으로 성경을 해석하진 않는다.
나는 종교와 과학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양립 가능하고,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PS. 창조과학에 관심이 있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창조과학보다는 진화창조론을 권한다.


※ 이 글은 과학이 유일한 진리라는 전제나 목적으로 작성되지 않았습니다. 과학으로 종교를 해석하려는 시도에 대한 평입니다.

돈과 물 그냥 생각나는대로

[물을 돈처럼 아껴쓰자는 얘기가 아니다]

문뜩 돈이 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은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요소지만 직접적인 영양분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저 혈액과 세포내에서 물질을 저장, 운송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성분 그대로 배설, 배출된다)

돈도 인간의 사회/경제 활동에 필수적인 요소지만 직접적인 가치는 없다. 그나마 예전에는 금속, 종이, 플라스틱의 형태라도 띄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컴퓨터에 저장된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며 세상 모든 가치를 '수송' 한다. 사실 가치와 엇갈려서 이동하기 때문에 전자와 공극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공극, 전류라는 가상의 가치는 물질인 전자의 반대로 이동한다는걸 생각하면 오히려 돈은 공극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는 아무런 가치도 갖지 않는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물교환을 벗어나면서, 금속주화와 금본위제, 종이/플라스틱 화폐를 거쳐 지금의 가상화폐(비트코인 말고 컴퓨터 속의 돈...)로 발전해 온 것을 보면 실물 가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돈의 본질은 아닐까?

확률과 통계 논리와 비판

[10%, 50%, 90% 는 이 정도 차이일까?]

28% 와 1%

"대한민국 국민 중에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28%다.
그러니 대한민국 국민인 나도 암으로 죽을 확률은 28%다."

다들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는 

"아무리 확률이 1% 라도 나한테 닥치면 그건 100%다. 결국 나에게 있어서는 되든, 안되든 두 가지. 즉 50:50 이다."

라는 주장을 믿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암으로 죽을 확률도 28%인가?

이런 주장들은 모두 통계와 확률의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할 때 그럴싸한 논리로 받아들여진다.

일단 암 사망률부터 살펴보자.
실제로 2016년도 대한민국 암 사망률은 28% 정도다. 당해 사망자 중에 28%가 암으로 죽었다는거다.
이것은 당연히 통계다.
이 통계로부터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암으로 사망할 확률도 28% 로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음 두 사람을 놓고 누가 암에 걸려서 사망할지 내기를 해보자.

1. 양가 모두 암 가족력이 있는 반도체공장 현장 직원.
2. 조상대대로 암은 걸려본 적이 없는 시골 토박이 청년.

승률을 높이려면 당연히 1번에 걸어야 할 것이다.
보다시피 암사망률 통계 28%의 대한민국에 살지만 두 사람의 암 발병 가능성은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면 암사망률 28%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값인가?


통계는 왜 확률과 다른가?

통계는 통계 모집단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다.
즉, 모집단의 특성이 '대한민국 국민' 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을 싸잡아서 하나의 값을 뽑아내는게 통계다. 

하지만 개개인은 보다 복잡하고 섬세한 구분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흡연자' 라는 모집단에서 추출한 암사망률 통계는 28% 보다 높다.
당연히 '대한민국 비흡연자' 라는 모집단에서의 통계는 28% 보다 낮다. 이들 집단을 합치면 대한민국 암사망률 28%가 나온다.

결국 개인의 암사망 확률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 중 가장 작은 집단의 통계가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1976년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나 1981년에 경기도 안양시로 이주하고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해 2017년 현재까지 20여차례 이사와 7차례 이직을 경험한 남자 집단의 암사망 통계를 구할 수 있을까?


통계로부터 확률을 구하는 방법

개인의 특성을 모두 반영한 집단은 매우 크기가 작아서 통계를 구하기 어렵다. 통계를 구할 수 없으니 확률도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사용하는 방법이 특성 모두가 아닌, 특성 각각의 집단 비교 통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흡연자 집단의 암사망률이 전체 평균보다 10%가 높다는 통계는 구할 수 있다.
직업군별로 반도체공장 직원의 암사망률이 전체 평균보다 5% 높다는 통계도 구할 수 있다.
남자가 평균보다 3% 높다던지, 농어촌 시민이 평균보다 2% 낮다(-2%)는 통계도 구할 수 있다.
채식주의자가 -4%, 기혼이 -1%, 가족력이 있는 경우 +9%, 없는 경우 -7%
마찬가지로 특정 질병을 앓은 경험이 있을 경우에도 암사망률은 평균보다 오를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속한 집단의 암사망률과 평균의 차이를 모아서 전체집단 통계 28% 에 더하면 내 암사망 확률이 나오게된다.
(남자와 여자를 비교하지 않고 평균과 비교했다는 부분에 주목하자.)

물론 이 방법이 내 진짜 암사망 확률을 나타내는건 아니다.
'통계로부터 확률을 구하는 방법' 일 뿐이다.
통계가 충분할 수록 실제 확률에 근접하게 된다.


어차피 나에게는 50:50 아닌가?

이쯤 되면 아무리 다양한 통계를 갖고 있더라도 내 암사망률을 정확히 알아내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살아오면서 확률이 낮을 때에도 '재수없이' 걸리거나, 확률이 높은데도 '재수없이' 피해가는 경우를 무수히 겪어봤다는 점이다. 
이러니 암사망 확률이 1%로 나온들, 그 1%에도 걸릴 가능성이 있으니 나에게는 '암으로 사망하느냐' vs '그렇지 않으냐' 의 두 가지 경우만 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이 논리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비올 확률이 10%면 비가 안오겠네" 식의 실수를 막아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방심을 하지 말자는 뜻으로 만든 논리 같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50:50 논리는 헛소리지만 
그렇게 믿는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

※ 이 글에 나온 통계 중 2016년 암사망률을 제외한 값은 실제 데이터가 아닙니다.

프로그래머의 도박 필승기법?? 프로그래머 생각

[블로그 포스팅 중에서 발췌]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Arze&articleno=17679999&categoryId=930754&regdt=20130630071400

내용에 보면 프로그래머를 수십년 하신 분이라는데...

모든 프로그래머가 수학자는 아닌가보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일반화 시켰구만...


블로그 소개글을 바꿔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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